충남 예산군 대술면 상향리 소재
이남규(1855∼1907)가 태어난 집으로, 10대 조부 한림공 이구가 조선 인조 15년(1637)에 짓고 헌종 12년(1846)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이남규는 조선 말기의 의사로, 고종 31년(1894) 일본공사 오도리가 군대를 이끌고 서울에 도착하자 상소를 올려 일본의 무도함을 규탄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 뒤에 명성왕후의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격분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의병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융희 1년(1907) 일본 경찰에 연행되어 온양 평촌 냇가에서 아들과 함께 순국하였다.
건물의 구조는 ㅡ자형의 사랑채와 트인 ㅁ자형의 안채,그리고 서쪽의 별당건물이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앞면 6칸·옆면 2칸 규모로 툇마루가 있다. 안채는 중앙에 넓은 대청을 두고 동쪽으로는 안방과 웃방, 남쪽으로는 부엌이 달려있다. 대청의 서쪽에는 마루를 깐 공간을 마련하고 사당처럼 이용하였다. 대청의 앞면은 지붕 처마를 좀더 앞으로 내어 빗물이 들이치지 않도록 처리한 것이 특징적이다. 별당건물인 평원정은 앞면 6칸·옆면 3칸 규모인데, 앞·뒤칸은 모두 개방된 퇴칸을 설치하였다